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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이 말하는 문학과 정치, 그리고 불교화엄, 관계지속의 超時間…만개한 꽃세상 - 불교는 문학과 동참하는 하나의 생명현상
글쓴이 : 관리자a 날짜 : 2017-05-11 (목) 14:31 조회 :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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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이 말하는 문학과 정치, 그리고 불교화엄, 관계지속의 超時間…만개한 꽃세상
불교는 문학과 동참하는 하나의 생명현상
  • 정리 하정은 기자 사진 김형주 기자
  • 승인 2017.05.06 08:02

 

수원 광교산에 봄꽃 만개한 지난 4월24일, 고은 시인을 만났다. 올해 여든셋의 시인은 다 닳아 빛바랜 셔츠를 걸쳤지만 번쩍이는 눈빛으로 주먹을 불끈 쥐면서, 이 시대 문학이 걸어야 할 길과 불교의 지향점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최근 박근혜 게이트에서 드러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기자들이 자기를 가만두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국정농단의 치욕과 아픔을 감추지 않았고 ‘촛불’의 가치를 중생의 주체성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 불교신문 초대 주필을 지냈던 고은 시인은 불교신문에 대한 사랑과 기대가 넘쳐났다. 가난 속에서 혼자서 취재와 원고청탁, 편집과 교정을 다했던 60여년 전 일을 어제처럼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나이 쉰에 결혼했지만, “내 아내는 나의 9할이나 7할이고, 나머지 1할 내지 3할도 아내를 통해 완성된다”는 위트있는 말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약 한달여간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문답을 완성한 뒤, 고은 시인을 만났다. 그의 마지막 말. “나는 ‘부처님오신날’이란 말이 어째 어색해. 그냥 초파일이 좋아. 초파일…. 좋지 않어?”

 

1. 선생님께서는 1950년대 한국전쟁에서 체험한 죽음과 절망으로 인해 한때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자살기도까지 하셨습니다. 어떤 상실감과 허무가 그토록 극단적인 선택까지 가도록 했을까요. 그리고 동시대 대다수 사람들과 달리, 어린 소년이었던 선생님의 심리나 환경에서 어떤 다른 지점이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과거밖에 없는 현재는 삶의 빈곤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동안 나는 내 과거에 대해 너무 많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과거의 희로애락들은 여러 개의 유령이 되거나 중음신이 되어서 그것들이 나의 현재를 채우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나를 사로잡는 매혹은 과거보다 미지와 미래 쪽입니다.

그래서 세계 여러곳의 미래학을 그다지 신임하지 않으면서도 미래로부터 밀려오는 그 행위의 전야(前夜) 속에 나는 선험(先驗)의 자화상을 예치(預置)합니다. 누가 내 미래를 묻는다면 그야말로 사실보다 진실의 내 마음을 활짝 열어줄 것입니다. 한마디로 과거만 말한다면 전생(前生)이나 내생(來生)이 없어서 삼생(三生)의 성립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 과거보다 미래가 더 절실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내 10대 후반의 극한상황을 한번 더 지금 이 자리에 소환한다면 내가 체험한 당시의 처참한 상황들은 많이 마모된 나머지 하나의 화석이거나 잘못 새겨진 기억의 파편일지 모릅니다. 다만 한국전쟁의 1950년대 초반 3년동안 한반도 남과북을 통틀어 300만명 이상이 죽었고 그 속에서 나는 살아남은 자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나는 내 동세대 청소년 절반 가까이가 없어진 반쪽짜리 전후 세대의 일원입니다. 나만 살았다는 사적인 죄의식과 함께 죽은 자들의 중단된 삶도 내가 대신 살아야 한다는 공적인 책무감이 있습니다. 이런 살아남은 자의 정신적 수습 이전의 나는 그야말로 세상의 가치와 진실 따위는 어떤 미련도 없이 부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선과 후방의 학살 보복학살의 반복 현장에서 나는 혈친의 의미 윤리의 의미 또는 인간이 서로 나누는 우애 따위가 얼마나 허위의 다른 이름인가를 통감했습니다. 국토는 초토가 되었고 식민지 이래의 근대 도시들은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내 고향의 항구도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양동작전으로 항공폭격과 해군함정의 함포사격 등으로 며칠이 지나자 참혹한 폐허로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과 상황의 폐허 뿐 아니라 내 농촌적인 순정이 다 망가지는 마음의 폐허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내 허무주의는 도교의 무위도 대승불교의 공(空)도 19세기말 서구 니힐리즘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한반도의 허무주의였습니다. 또 나는 수많은 학살당한 시체더미를 며칠동안 처리하는 현장에도 있었습니다. 그 죽음의 바이러스가 내 뇌의 기억 속에서 나의 가슴 속 염세자살시도로 나아갔습니다. 이런 실신과 실의의 상태 끝에 우연의 단초로 또는 필연의 귀결로 불교를 만나게 됐습니다. 얼음이 녹아 수면을 이루는 것처럼 그렇게 불교가 나에게도 닿았습니다.

 

2. 전쟁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데 있어 불교와의 인연이 작용하였는지요. 효봉스님과의 일화를 조금 상세하게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불교가 당시 선생님에게 어떤 가치를 주었는지,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궁금합니다. 1952~1962년 약 10여년간 ‘일초(一超)’라는 법명으로 한 승려생활은 어떠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절생활 일화 중심으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산 범어사에서 미륵암 짠 김치 한 가닥으로 여럿이 공양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전쟁 발발 며칠 뒤 고향의 후퇴, 인공시대의 동원, 수복직후의 학살과 보복학살들을 통해서 인간의 사악과 광기를 체험한 이래 고향이라는 장소 자체도 사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출을 되풀이했습니다. 아버지가 방안에 가두어 두는 며칠이 지나면 탈출을 거듭합니다. 세 번째 가출의 빈 들길에서 떠도는 승려를 만났습니다. 그 당시에는 승려들이 산중의 전투 때문에 다 세속 언저리에 나와 떠돌았습니다. 그런 승려의 한 사람이 혜초였습니다. 그는 효봉선사의 상좌였습니다. 그는 간화선 뿐아니라 교학과 외전(外典)에도 해박했습니다.

내가 헤겔좌파 포이어바흐를 안 것도 그를 통해서였고 용수보살의 ‘중론’도 그때 알았습니다. 그와 함께 하루에 트럭 한두대밖에 지나가지 않는 소달구지길 신작로 가녘 맨 땅에 마른 풀잎을 깔고 좌선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들길이 선방이었습니다. 낭만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뒤 그가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통영 효봉에게 가라’라고 한 마디만 남겼습니다. 나는 무척 낙담한 나머지 여수까지 가서 통영가는 배를 탔습니다. 통영 미륵도 미래사가 우선 인법당 한 채만이 섰고 하나의 가건물이 있던 초기였습니다. 그 당시 효봉 문하에 있는 탄허나 경산들이 떠나고 구산이 살림을 총괄하고 있었습니다.

내 법명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도 그때부터였습니다. 그때는 칙간 용변의 종이도 없던 때라서 대쪽으로 훑어낸 다음 물에 헹구는 식이었고 국수나 두부 떡의 삼소(三笑)도 아주 드물었습니다. 비누는 아예 없었습니다. 그런 가난의 청정도량이 오히려 나를 안정시켰고 내 깊은 상처가 어느만큼 임시로 치유되기도 했습니다. 효봉스님의 첫 말씀은 ‘너 책을 멀리 하거라’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나는 그 훈계의 경각심으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버려서 내 문학 60년의 삶을 이어왔습니다.

휴전선 이남의 모든 사찰을 다 나의 밤이 있었던 곳입니다. 임시수도 부산시대 승려들도 피난민 신세로 떠돌고 있을 때 범어사는 가장 바쁜 객승의 절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금정산 일대 암자도 인원초과였습니다. 김치도 아주 짜게 담가서 여럿이 먹어야 했습니다. 김치 한 가닥이면 한 사람의 한 끼로 충분했고 양말도 누덕누덕 기워 신었습니다, 나도 고무신이 찢어져서 새끼로 동여매고 걸었습니다. 강원도 정선 비행기재 넘을 때도 그런 남루한 거지 행색이었습니다.

하지만 낙산사 홍련암 바닷가 절벽 끝에 앉아 삼매에 들 때의 법열(法悅)은 지극했습니다. 절은 돈 냄새 나면 끝장입니다. 절은 가난할 때가 가장 출세간의 가풍이 살아나지요.

 

3. 승려생활을 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폐결핵’이란 작품으로 조지훈 시인을 통해 등단한 것으로 압니다. ‘폐결핵’이란 작품이 나오게 된 계기와 유독 그 작품을 시인협회에 보낸 경위도 궁금합니다.

 

나의 문단 등단은 내가 아니라 우정과 배려들의 뜻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시인협회 초창기 회장 조지훈에게 내 친구인 추상화가 나병재가 내 시 한편을 가지고 있다가 그 시인협회 기관지 〈현대시〉 창간 광고를 보고 보낸 것이 신인작품에 선정되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나는 산중에서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효봉스님이 종단의 소임 총무원장 그리고 통합종단 초대 종정으로 추대될 때 나로서는 서울의 조계사와 선학원에 불려와 있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때에야 내가 등단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또 하나, 오래동안 폐간되었던 만해 한용운 편집의 〈불교〉를 속간하기 위해서 오대산 탄허스님의 지원으로 내가 편집을 할 때 편집할 줄 몰라 지면의 공란들이 생기면 거기에 내가 써놓은 시 비슷한 것이나 뭔가를 끼워 넣었습니다. 당시 교통부 국장이었던 한 신도가 효봉스님과 나를 자주 찾아왔는데 그가 내가 편집한 것을 훑어보다가 내가 메운 작품을 보고 누가 쓴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내가 서울에 와서 끼적인 것이라고 대답한 며칠 뒤 그는 나에게 그런 시가 몇편이나 되느냐고 해서 다섯편 정도 된다 하니 바로 나를 끌고 마포 공덕동 서정주 시인의 집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내 작품이 읽혀졌고 당장 3회 추천을 받아야 하는 걸 한번에 3편 전부를 〈현대문학〉에 추천하게 되었습니다. 이례적이었습니다. 한번으로 3회를 추천한 것입니다. 이렇게 내 의지 밖에서 나는 시인생활을 거의 아뢰야식으로 시작한 셈입니다.

4. 1950년대 후반부터 불교신문 초대 주필 등을 역임하면서 불교신문(당시 〈대한불교〉)을 제작했습니다. 당시 신문을 만들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초창기라 주필이라 해도 편집, 교정, 원고청탁, 취재를 거의 혼자 했습니다. 그때 한 두사람 기자로 일하는 처사가 있었습니다. 나는 이에 앞서 탑골승방에 주석하고 있던 행원스님, 즉 숭산스님을 세 번이나 찾아가 함께 비구승단에서 지내자 했습니다. 그는 나와 친교가 두터워지면서 비구승단의 분위기를 좋아하게 됐다가 드디어 조계사로 옮겨와서 총무부장 등으로 종단에 동참합니다. 나와는 밤낮으로 함께 거량을 했습니다. 나중에 6비구 사건의 배후로 몰려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서 잠적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과 홍콩 등지로 나가 해외포교의 길로 가 세계 3대고승이 되기에 이릅니다.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스님입니다. 숭산이 실질적인 사장이었고 나는 그와 함께 고단한 주필노릇을 맡았던 것입니다. 오늘의 불교신문 첫 걸음이 아닐까 감개가 오릅니다.

 

 

5. ‘무소유’의 법정스님 역시 불교신문에서 많은 추억을 남겼습니다. 법정스님과의 인연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내 사형 구산스님이 정화종단의 초대 전남종무원장으로 부임해서 광주 동광사에 종무원을 개설했습니다. 내가 가서 정화운동을 도왔습니다. 그 무렵 나는 대담무쌍하게 전후의 지성에 불교사상을 접목한 강설을 했습니다. 목포 정혜사에 한때 체류하며 목포극장에서 ‘각존과 실존’ 강연을 했습니다. 그때 목포의 청년지식인 대학생들이 나의 주위에 마구 떼거리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목포상과대학을 중퇴한 박재철입니다. 그는 해남 우수영이 고향인데 목포시내에 숙식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절에서 숙식할 수 있는 청년학생회 총무를 맡게 해서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다 입산출가를 결심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오대산으로 갈까 하다 내 사제 일관(박완일)이 통영 미래사로 가는 길에 그를 데리고 가게 되었습니다. 내 영향을 많이 받던 시절입니다. 그 뒤 미래사에서 함께 지내다 그는 초발심자경문을 익히고 곧 행자에서 사미계를 받았습니다. 효봉문중의 하나가 된 것이지요. 그 당시 미래사에는 만년의 석두스님도 향봉도 계봉도 함께 있는 중시하(重侍下)의 3대가 아주 작은 절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러다 법정은 해인사로 갔습니다. 내가 서울에 있을 때 청담스님이 나에게 너무 서울중 노릇만 하지 말라며 해인사에 가 소임도 보고 수행도 하며 자기를 도와달라 했습니다. 총무원장과 해인사 주지를 겸임한 그가 나의 산중생활을 강력하게 권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동대총장 백성욱 박사가 내 재능이 아깝다 하며 동재 대학원에 적을 두고 공부한 뒤 동대의 불교학을 발전시키라고 인도했습니다. 나는 둘 중 가야산행을 택했습니다. 그 당시 동국대 생활은 세속생활쪽이어서 출가한 산중 수좌의 자부심으로는 내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법정이 강원에서 학인생활을 할 때 나는 선을 하면서 해인사 종무를 보았습니다. 청담 대리인이었습니다. 그당시 사라호 태풍 이후 홍제암 앞 계곡에 빨치산 해골 몇 개가 홍수의 격류로 내려왔습니다. 그 해골을 수습, 재를 지낸 뒤 해골 하나를 내 방에 두고 내 고골관(枯骨觀)의 좌선에 활용했습니다. 나는 단식정진도 30일 앞두기까지 밀고 나가다가 청각이 없어져서 28일만에 미음을 먹은 적도 있습니다. 법정은 거기 있다가 통도사 운허스님한테 갔습니다. 그것이 그와의 산중 인연이고 나중에 불교신문 논설위원을 한 것이 내가 만든 인연의 연장이기도 합니다. 그는 더러운 것에 견디지 못합니다. 마당도 길도 늘 깨끗해야만 합니다. 해인사 시절 법정이 쓴 시 10여편을 중앙문단에 보내 추천을 받게 했는데 추천위원들이 퇴짜를 놓아 그 대신 수필 한 편을 쓰게 해 내가 〈현대문학〉에 실리도록 했습니다. 그게 법정 수필의 시작인 셈입니다.

문학은 정치권력에 저항을 생태로 해

새 대통령은 가장 불행한 대통령

너무나 넘어야 할 장벽이 숨찹니다

 

나의 불교는 문학 통해 소화되기도 했고

아직 소화돼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연기와 공!

인류 미래 지향하는 진리

어느 진리도 이것 앞에서 무효

6.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와 시인이 된 계기를 ‘전태일의 죽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전태일의 죽음을 통해 어떠한 시인으로서, 어떤 시로서 세상을 향해 이야기하고 행동하고자 하셨을까요.

 

나는 4월혁명, 5월 쿠데타 직후 해인사를 대처승으로부터 지켜낸 가람수호자라는 종단의 찬사를 받았지만 내 가사가 찢기고 내 머리가 해인사 구광루 계단에 찧어 피가 흘렀습니다. 그런 대처승측의 협박에도 내가 주지직을 내주지 않고 선방수좌도 원로대덕도 다 도망간 뒤의 강원 학인들과 함께 절을 지켜냈습니다. 이 일로 내가 해인사 주지 대리로 있다가 불교신문의 일로 다시 서울로 오자 종정 하동산이 나를 칭찬하며 속리산 법주사 주지로 임명했습니다. 그런데 속리산은 그 당시로는 너무 멀고 강화 전등사가 서울과 가까워 서울에서 하던 신문사 업무가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전등사 주지 박추담을 법주사 주지로 양보하고 내가 전등사 주지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전등사에 가니 쌀 한되도 다 처리해버린 빈 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강화도 군청에 가서 구호양곡을 얻어다 절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을 왕래하며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마니산 산상의 여름밤 철야정진 중 예술의 길, 종교의 길 두 갈래에서 예술을 길로 내 운명을 바꾼 것입니다. 그런 뒤 환속해서 문필생활을 하는 동안 다시 허무에 시달리는 1960년대를 지나서 1970년 겨울 한 노동자의 분실자결사건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효봉이 가고 전태일이 왔다’고 선언하고 나는 참여전선의 시인으로 나선 것입니다.

 

7. 1980년대 내란 음모죄로 3년여간 옥살이를 하셨습니다. 내란 음모죄로 죄를 뒤집어 쓴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감옥이라고 할 수도 없는 작은 개미굴에서 사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정신상태는 어떠했는지, 어떤 사유로 살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대서사시와 같은 작품구상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70년대 유신체제 하에서 나는 민주화운동의 전위에 있었습니다. 민주회복국민회의 문인대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대표 그리고 한국인권운동협 부회장, 민주주의 민족통일 국민연합 중앙상임위 부위원장 등을 거치며 박정희 장기독재와 싸웠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가 주도한 YH노동운동으로 부산마산민주화가 폭발하고 그것이 박정희 암살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수많은 가택연금과 구금 연행과 함께 네 번의 감옥생활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신은 신군부 전두환 일당에 의해 이어지고 나는 내란음모, 계엄법 위반, 계엄 교사 등의 중범으로 육군교도소 특별감방에 갇힙니다. 김재규가 있던 방이 내 방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처형 직전의 극한상황이었습니다. 국내와 해외의 구명운동이 있었습니다. 또 그곳에서 내 ‘만인보’ ‘백두산’ 등의 대작도 구상했습니다.

 

8. 화엄사상을 자주 거론하십니다. 화엄의 본연의 뜻은 무엇일까요. 요즘같은 경쟁과잉시대에 있어 화엄은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요. 그리고 화엄을 통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자세는 무엇일까요.

 

내 젊은날의 허무주의, 또 그 이후의 현실참여주의 그밖의 내 여러 지향이 하나의 총체성을 이룬 것이 자연스럽게 화엄사상과 맞닿아있습니다. 외국에서도 나의 화엄적 우주관을 좋아합니다. 화엄은 한마디로 조화의 이상향입니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그런 개체의 무한이 전체의 무한을 이루고 관계지속의 초시간(超時間)을 누리는 가치입니다. 만개한 꽃세상을 닮았습니다.

 

9. 서재에 책상은 왜 세 개인지 궁금합니다. 각각의 쓰임새가 있는지요.

기나긴 서사시의 책상, 그때그때의 것을 쓰는 책상, 산문이나 기조연설이나 담론의 원고를 쓰는 책상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 책상 앞에 앉으면 그 분야의 필자가 됩니다. 장소가 실체를 규정합니다.

10. 2년 전 불교신문에서 정병조 동국대 명예교수와의 대담을 하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실학불교시대를 열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점점 외로워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설 것인가를 연구하고 마음의 평화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 길을 제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시대 불교가 해야 할 역할에 관해 다시한번 상세하게 말씀 부탁드립니다.

나는 허학이나 공론도 지지합니다. 가령 형이상학의 비실용성도 나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용수의 중론, 그리고 유식학과 화엄학도 아주 좋아합니다. 중국이 도덕경밖에 없어서 당나라 현장이 인도에 갈 때 그것을 가지고 갔는데 그 당시 인도 대승불교 밀교의 사상적 차원이 하도 높아서 끝내 도덕경을 꺼내지도 못했다 합니다. 그런 중국대륙의 오랜 빈곤을 남송의 주자가 불교 화엄사상을 모방해서 성리학을 펼친 것이 중국사상의 성장을 이룩합니다. 말하자면 이런 성리학이 퇴계에 이르러 집성된 것이 사실상 공리공론인 것입니다. 율곡이 이를 극복하고 한 주기론 같은 것이 실학의 실마리이기도 합니다. 불교 역시 형이하학이 아닌 사상체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대중과 현실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남종선의 혜능이 개창한 선의 세계도 문자 지배층의 것이 아닌 민중성이 강합니다. 하나의 실학이었습니다. 지금의 한국불교가 역점을 둘 것이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우위에 두는 소승세계를 대담무쌍하게 타개할 때 실학불교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한마디로 ‘연기(緣起)’가 실학이면 ‘중도(中道)’의 공관(空觀)은 허학이고 본론(本論)입니다.

11. 죽어서야 삶을 알고, 잃어버려야 사랑을 알고, 불행해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역설적인 표현을 하셨습니다. 그 반대로 살려면 어떡해야 할까요. 죽기 전에 삶을 알고, 잃어버리기 전에 사랑을 알고 불행이 찾아오기 전에 행복을 느끼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행복은 교사나 은사가 없습니다. 스스로 만나는 삶의 가치입니다. 봄꿈이기도 합니다.

 

12. 현대인들은 가진 것도 많고 넘치도록 누리면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마음의 평화를 성취하지 못하고 번뇌에 이끌려 괴로워합니다. 불교는 수행을 통해 마음에 고요와 평화, 열반과 해탈을 얻을 수 있는 종교라고들 하지만 정작 불교인들조차 행복을 찾아 헤매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어떻게 수행을 해야, 또는 어떻게 살아야 평화롭고 행복할까요?

 

오로지 불교에만 행복이 있다는 주장은 맹목적입니다. 현대는 탈종교의 시대이기도 합니다. 서유럽은 종교가 없습니다. 삶과 문화가 종교를 능가합니다. 로마교황청이 멕시코, 필리핀, 아프리카의 어느 곳, 그리고 한국을 중요시하는 이유가 아직은 종교의 가능성이 있는 후발 종교지역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만큼 종교의 현장이 없어져가고 있는 것과 함께 인간의 영적 평안이나 열반으로부터 멀어져가고 문명의 파편으로 살고 있습니다. 평화와 행복이 고귀한 것일수록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더 추상화되고 있습니다. 행복을 갈망하지 않고 불행을 견디는 기술을 터득하기 바랍니다.

 

13. 또한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가 말하는 우리 시대의 부끄러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며, 이같은 교활하고 수준 낮은 정책을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박근혜라는 존재는 한국의 치욕입니다. 그리고 그는 시민 국민 그 자체가 될 수 없는 인간적 장애자입니다. 박정희라는 망령은 최우선적인 청산의 대상입니다. 블랙리스트는 나에게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14. 예술이나 문학은 정치와 떨어져 있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와 유착관계를 형성하거나 정치적으로만 비쳐져서도 안될 것입니다. 문학과 정치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돼야 할까요.

 

문학은 정치를 벗어나는 역할만으로 존재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문학은 정치권력에 대해 비판과 저항을 그 생태(生態)로 하고 있는 행위입니다.

 

15. 문학은 종교를 떠나서는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종교적 가치와 종교적 사상, 특히 불교사상이 문학에 특히 ‘고은 시인의 문학’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을까요.

 

문학은 종교의 하위도 상위도 아닙니다. 종교가 문학을 통제하는 봉건시대는 갔습니다. 나의 불교는 내 문학을 통해서 소화되기도 했고 아직도 소화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불교는 유산만으로 남은 것이 아니라 늘 문학과 동참하는 하나의 생명현상입니다. 석가여래와 불교로 고착되면 그것은 죽은 불교입니다. 불교는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고 또 태어나는 생명의 연속입니다. 세세생생의 불교 말입니다.

16. 촛불시위에서 국민들의 ‘절실한 외침’을 어떻게 바라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에 반해 태극기집회를 바라본 시선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세계사의 위대한 미학의 정치적 승리입니다. 내가 이런 한국 촛불혁명의 시대에 사는 영광은 일회적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혁명의 씨앗은 세월호의 원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7. 1983년, 다소 늦은 나이에 결혼하셨습니다. 왜 뒤늦게 결혼을 하셨는지, 결례되지만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상화 교수님과의 결혼이 선생님의 삶에 어떤 변화를 주었을까요. 부인에겐 어떤 남편이며, 따님에게는 어떤 아버지였을지도 궁금합니다. 사랑을 정의한다면 무엇일까요?

 

내 아내는 나의 9할이나 7할입니다. 내 1할 내지 3할은 아내를 통해서 완성됩니다. 내 뒤에는 늘 아내의 실재와 부재가 서 있습니다.

 

19. 이제 며칠이 지나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합니다. 이 시대 국가 지도자란 어떠한 자격을 갖춰야 하고, 어떠한 신념과 사상이 우선돼야 할까요.

 

새 대통령은 불행한 대통령입니다. 너무나 넘어서야 할 장벽이 숨찹니다. 축하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먼저 청와대 진용을 대폭 축소하기 바랍니다.

 

20. 마지막으로 부처님 오신 날이 코앞입니다. 2500년 전 우리에게 부처님이 오신 뜻은 무엇일까요. 선생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고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사상이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둘입니다. 아까도 꺼낸 바인데 연기와 공! 이것이면 인류의 미래를 지향하는 진리입니다. 어느 진리도 이것 앞에서 무효입니다.

 

 

 

 

 

정리 하정은 기자 사진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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